제2장「언문일치」의 가장(仮装)
«1»
원래 언문일치라고 하는 것은「말(言)」을「글(文)」에 가깝게 만들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글」을「말」에 가깝게 하기 위한 시도라고 한다. 규범성이 요구되는「글」과 시대의 부산물인「말」이 괴리하는 것은 숙명이라서 그 괴리가 임계점에 달했을 때「문」의 측면으로부터 일어나는 자기 개혁의 움직임을「언문일치」라고 칭해온 것이다. 설령「말하는 듯이 쓰는」것은 가능할지라도 구어 그 자체는 결코 문장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도 소설에 있어서의「언문일치」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체의 문제이고, 구어(話し言葉)인 것처럼 “가장 된” 문어(書き言葉)의 문제인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말」과「글」이 일치한 예가 있을 리가 없을 뿐더러, 거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항상 상대적인 근접의 정도라고 말해도 좋다. 근대국가의 요청 하에 무엇을「일치」라고 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교환된 암묵적 합의(의제)야 말로 바로 그 본질이었던 셈이다.
이 운동이 일본어의 역사에서 공적으로 가장「말」과「글」의 괴리가 컸던 메이지 초기에, 일상회화가 갖는 대화적인 호흡을 문장에 불어넣는 것을 목표로 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특히)소설문체에 관련하는 이상, 사태는 반드시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언표주체의 생생한 감성을 연출할 방도보다는 오히려 그 소거를 가장하고<「일찍이—거기에—있었다(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를 얼마나 재현(再現)적으로 나타낼까>라는 객관적인 세밀성을 표방한 제도로서 형성되어가게 됐던 것이다.
소설에 있어서 언문일치가 급속히 일반화 되어간 것은 메이지 30년대 후반 무렵부터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자연주의 문학의 발흥(勃興)과도 거의 병행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시기 이후, 언문일치를 논할 때에는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사실(写実)」과「묘사(描写)」의 두 단어가 키워드로써 얼굴을 내비치게 된다. 당시의 논의(議論)를 살펴보면, 언문일치체는 우선 일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심리를 세밀하고 평이(平明)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점으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본래 구어는 대화 속에서 즉흥적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애초에<‘서술자의 판단을 억제하고 객관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구어적 요소가 필요하다>는 논의 자체는 비정상적인 것임에 틀림없지만,「재현=표상(表象)」이라고 하는 환상을 토대로 하여 결과적으로는 “화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구어”를 이상(理想)으로 하는 매우 도착(倒錯)된 형태의 픽션적 이념이 소설에 강제되게 된 것이다.
이하부터는 구체적으로 언문일치체 소설에 있어서의 문말사(文末詞)「~た」에 주목하여 언문일치가 어떻게 정착해 갔는가 라는 관점으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た」의 정착을 생각하기 전에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 메이지 20년에 간행된 문부성편집국편찬『보통소학독본(尋常小学読本)』이 달성한 역할이다. 전7권 중, 특히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제1권은 평이함을 염두에 두고 전편에 걸쳐 구어체가 사용되고 있다.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であります」조(調)이지만 여기에 더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た」로 끝맺는 형태가 부분적인 것을 포함하여 전34과 중 18과에나 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이솝이야기를 모방한 제9과, 제17과와 옛날이야기(「桃太郎」)를 소재로 한 제26~28과이다. 예를 들어「桃太郎」는 <むかし、ぢゞ は、山 へ くさかり に ばゞ は、川 へ せんたく に 行きました。/ 川上 から 大き な 桃が 一つ、ながれて 来ました。> 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등장인물의 회화는「」로 구별된 현재시제, 다른 문(文)은 과거시제의「~た」로 통일되어있다.
오늘날에 비추어봤을 때 표준적으로 보이는 이 문체는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것이었다. 문학작품에 문말사「~た」를「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의 지표로써 의식적으로 사용한 대단히 이른 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야기 내용의 시간과 그것을 기술하는 현재가 확실히 구별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흐름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메이지20년대 이와야 사자나미(厳谷小波)는『일본 옛날이야기(日本昔噺)』(전24편, 1894-1896, 博文館)을 통하여「むかしむかしあるところに~ました」라고 하는 이야기 형태(話形)를 문어로써 널리 정착 시켜 나갔던 것이다.
「첫머리에(はじめに)」에서도 밝혔듯이, 노구치 다케히코(野口武彦)는 <いづれの御時にか>(『源氏物語』), <今は昔>(『今昔物語』)등과 같은 모양새로 일본의 산문예술이 스스로 <作り物(虚構)>임을 가리키는 <허구기호>를—마치 악보 첫머리의 높은음자리표처럼—겸비해 온 역사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근대소설은 작품세계를 일상적인 현실처럼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요청 때문에 직접 이러한 표식이 표면화 하는 일이 없지만, 노구치에 의하면 그 대신에 스스로 소설언어임을 나타내는 변별기호로써 문말사인「~た」를 기본시제로 내포(内蔵)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솝이야기나 옛날이야기처럼 전승성에 뒷받침 된 옛날이야기에 더 용이했을 허구성의 제시를 일상적 리얼리즘소설에 있어 얼마만큼 실현 가능할 것인지—이후 전개된 근대소설은 실로 이런 점을 둘러싼 시행착오의 역사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
잘 알려져 있듯이, 근대소설에 있어서「~た」의 정착에 크게 관여한 것이 이반 트루게네프의『사냥꾼의 수기』(1852)를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번역한『あひゞき』(「国民之友」明21(1888) 7-8)이다.
전편이 거의「~た」로 통일된 이 문체는 당시로는 아주 청신(清新)한 것이었다. <일본어로 어떻게 저렇게 부드럽고 세심한 표현이 가능했을까>(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桜の実が熟する時』「世界文学」大3-7(1914-1918)), <세심한 서술법은 외국 문장의 특장점으로 일본 문장도 앞으로는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타야마 가타이(田山花袋)『東京の三十年』大6(1917), 博文館), <이런 문장도 쓰려고 하면 쓸 수 있구나. 이렇게나 세심하고 면밀히! 정확하게!>(타야마 가타이,『近代の小説』大12(1923), 「近代文明社」)등등, 후일 자연주의의「묘사」를 이끌어간 사람들은 젊은 날「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를 재현적으로 제시해 간 이 문체에 너나 할 것 없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것과 병행하여 이 시기에는 언문일치체 소설의 시도가 차례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야마다 비묘(山田美妙) 의『風琴調一節』(「いらつめ」明20(1887)),『武蔵野』(「読売新聞」明20(1887))을 비롯하여 아직「~た」는 극히 부분적인 형태로밖에 쓰여지지 않았다.
당시 청신한 언문일치체 소설로 정평이 났던 야마다 비묘의『蝴蝶』(「国民之友」明22(1889))의 한 구절에 그려지는 풍경은 어느 한 지점—『あひゞき』의 경우에는 숲 속에 앉아 나뭇가지 끝을 보고 있는 지점—으로부터의 원근법이 아니라 파노라마식으로, 본 것을 순차적으로 실황중계 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나친(過剰な) 비유를 채택하고 있는 그 서술은 언문일치의 묘사 방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공연하게 비묘가 가진 한계라고 취급되는 일이 많은 듯 하다. 그러나 사태는 늘 방패의 양면으로부터 성립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です」「~ます」라는 경어체는「~た」「~である」보다도 회화체에 근접해 있고, <前回に見えた蝴蝶といふ少女です><実に~思ひましやう>라는 문어를 통해 봤을 때도 분명한 것은 그곳에는 항상 수신자(受け手)에게 보내는 구체적인 응답관계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그것은 화자, 청자 모두가 서로의 얼굴이 보이는 구어체에 의해 소설을 구성해가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며, 그 후에 전개된 언문일치체 소설은 항상 이 양방(両方)의 요청, 즉「~た」에 의해 완결된 세계를 구축해 가는 방향과 실황중계적인 현재형으로 독자에게 말을 걸어가는 방향—「그리는 것(描く)」과「말하는 것(語る)」—과의 갈등 속에서 전개되게 된다. 문말사「~た」가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는 방금 전에 언급했던 노구치 타케히코 외에 야나부 아키라(柳父章),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과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논의가 축적되어 왔다. 예를 들어 야나부는 서양어의 과거형에 해당하는 번역에 완료의 조동사「~た」를 대응시킨 의미를 인정하는 한편, 기존(在来)의 의미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차이(ズレ)를 떠안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서술(話)은 화자(話し手)로부터 독립한 객관적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상황(事柄)에 대한 화자의 확인판단>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자의 판단 유무는 이후에도 논의된 바가 있으나, 아무래도 이러한 논점에는『あひゞき』가 일인칭 회상형식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이 깊게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작나무 숲 속의 젊은 남녀가 밀회하는 모습을 목격한 체험담으로 서술되는(語られる) 이 소설은 집에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여자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감개(感慨)를 시점으로 끝맺어지고 있다. 즉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에 있었던 실황중계적인 시점—밀회를 목격하고 있던 당시의<자신>—과 또다시 그것을 외부 프레임(外枠)으로부터 회상하고 있는「~た」의 세계—이야기(物語)를 통괄하는 시점—가 적어도『あひゞき』에서 만큼은 훌륭하게 양립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얼굴이 보이는 일인칭회상형식을 취함으로써 비로소『あひゞき』는 스스로의 견문(見聞)을「~た」의 시공간 속으로 가둘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た」의 “발견”은 동시에 연작 중이던(書き継がれていた) 언문일치 소설의 시작(試作)인『浮雲』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전장에서 서술했듯이『浮雲』의 제3편(「都の花」明22(1889)7~8)에서는 제1편(明20(1887)6, 金捲堂)의 장면내재적인 시점, 또는 제2편(明21(1888)2, 金捲堂)의 주인공 분조(文三)에 밀착한 시점으로부터 서서히 이탈하여 객관적, 전지적인 시점을 지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각 인물의 심리를 설명하며 <人事で無い。お勢も悪かッたが、文三もよろしく無かッた>(제16회) 라는 내래이션(物言い)이 상징하듯이 문말사「~た」가 더 없이 중요한 역할을 이행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제3편에 이르는 과정에서 확실히「~た」의 사용빈도가 잦아졌으며 거기에는 분명히 동시에 번역되고 있던『あひゞき』의 영향이 있었음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あひゞき』의 성과가 반드시『浮雲』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인칭회상체였던『あひゞき』와는 달리, 전지적 객관성을 지향한『浮雲』제3편의 경우는 공교롭게도「~た」의 증가에 보조를 맞추듯, 장면내재적 감성이 그 정채(精彩)를 잃고 말았다.「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를 재현적으로 제시하려고 한 지향과, 장면에서「함께 호흡하려는(ともに―生きる)」것을 지향한 당사자의 시선(まなざし). 아마도 이 양자는 항상 서로를 배반할 숙명인 탓에『浮雲』는 결국 시행착오를 거듭한 채 중절되고 만 것이다.
「~た」에 관해서는 미타니 구니아키(三谷邦明)와 노구치 다케히코가 이 문말을 인칭적세계와의 관계에서 논하고 있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예를 들면, 미타니는「彼は~した」라는 표현은 본래 추정 없이는 사용할 리가 없다고 하며 일인칭에서 사용되어야 할「~た」를 삼인칭으로 사용한 점에서 근대소설의 성립요건을 평가하고 있다.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일인칭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た」를 삼인칭으로 사용했기 때문이고, 거기서는 삼인칭과 일인칭, 등장인물의 개념(노구치는 기존의 죠루리(浄瑠璃)에서의「초월적일인칭」등을 예시로 들었다)이 근대소설에 정착한「~た」를 기점으로 성립되었다는 점에 그 의의를 인정하고 있다.
한편 이것과 별개로「~た」가 가지는 의의를 과거시제의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독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 후지이 사다카즈(藤井貞和)다. 후지이는『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시점(はじめ)으로 하는 서술문학은 원래 <비과거>의 문체로부터 발생하는 임장감을 본지(本旨)로 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근대소설이 언문일치에 의해서 비로소 과거시제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경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게다가 야나부와 미타니가 모두 도키에다 모토키(時枝誠記)의 설을 근거로「~た」에는「문제상황에 대한 화자의 인식판단」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점을 비판하며「~た」라는 과거 감각이 전국적으로 긴 시대에 걸쳐 자라났다는 경위를 검증한 것이다.
이러한 여러 논의들로부터 부각되는 것은 언표주체의 감성이나 판단이 문말사「~た」가 과연 어디까지 관계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여기서 약간의 예측을 말해두자면, 근대소설은 그「재현=표상」이라는 환상에 의해 “화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구어”를 선택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서「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를 제시하는 데에 힘쓰면 쓸수록 반대로 ‘그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 암묵적으로 유발되게 되는 역설을 떠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예를 들면, 노구치 타케히코는 다니자키 쥰이치로(谷崎純一郎)의『近代口語文の欠点について』(「改造」昭4(1929) 11)을 예로「~た」는 <중립적인 언어공간을 존립시키기 위한「삼인칭」의 형태표시>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のである」를 붙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이유는 <언어공간에 있어서의 삼인칭성과 발화행위가 소거된 일인칭성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미묘한, 이른바 위험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듯 상술로 소개한 많은 논의들이 객관성을 나타내는 표식「~た」의 배후에 있는 모종의(種の) 주관 표출을 감지하는 것은 역시 거기에 삼인칭적인 세계와 일인치적인 세계가 서로 상충(せめぎ合い)—한쪽 편이 다른 한쪽 편을 끌어내고, 불러내는 갈등—하며 내재하고 있기 때문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과연 객관성을 명확히 주장하며 장면에 내재하는 관점으로 실황중계를 해가는 것이 얼마나 가능했던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정보의 송신자(送り手)와 수신자(受け手)사이의 관계를 어디까지 서술에 표출시킬 것인가’ 라는 문제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언문일치를 시도함에 있어 가장 고심했던 것 중 하나가 서술자(書き手)와 독자(読み手)사이의 대우관계로 그가 ‘경어 생략이 독자에 대한 결례는 아닐까’라는 걱정을 안고 있었던 것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余が言文一致の由来』「文章世界」明39(1906)·5). 일반적으로 소설의 문체에는 그곳에 상정된 청자(독자)의 존재—이인칭적인 세계—가 어디까지 서술에 현재화(顕在化)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수(指数)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오히려 이것을 제로에 가깝게 하는 것에「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의 재현적인 제시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면, 반대로 그 지수를 높여 독자에게 말을 걸며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려고 하는(現場を共に生きようとする) 언문일치 형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히려 그 편이 청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 대화에서 호흡을 살려가는 식의 보다「말」에 가까운 문체를 창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언표주체의 감성이나 판단에 관해서는 스즈키 사다미(鈴木貞美)의 논도 주목할만하다. 스즈키는 앞에 나온 후지이의 견해를 근거로 하면서 그 예로써 구니키타 돗포의『武蔵野』(「国民之友」明31(1898)1~2)에 나오는「~た」는 <눈 앞에 있는 광경의 변화를 신선한 것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감정을 나타내는 완료의「~た」였던>것은 아니었을까 라고도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그 지적의 배경은 ’「~た」가 서양어의 과거시제에 반드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독자적 세계 개척에 말미암은 판단일 것이다.
돗포의『武蔵野』의 작중에는 사실『あひゞき』가 인용되고 있는데, 이것을 길잡이(手引き)로 새로운 풍경을 획득해가는 프로세스가 1편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문이「~た」로 끝맺어지고 있는 곳은 극히 적다는 점에 주의하고자 한다.
돗포의 서술 속에는 화자로 상정된 <君>가 내포되어 있으며 그러한 <君>를 부르는 것을 통해 독자는 “武蔵野”라는 인위와 자연이 융합한 새로운 공통체에 갇히게 된다. 그 점에 대해 지적하자면, 이 작품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삼인칭적 세계보다도 오히려 이인칭적세계—「君」에 대한 부름(呼びかけ)—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武蔵野』와 본보기로 쓰였을『あひゞき』사이의 거리는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あひゞき』를 인용하는 것으로 인해 일인칭에서나 보여줄 수 있는 원근법적 세계를 덧그리며 결과적으로는 대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화세계가 성립되어 버려진 결과에 대하여, 이러한 언표주체와 작중에 내포된 독자 사이에 교환되는 살아있는 ‘응답관계’에 그 뒤에 출현한 자연주의 이후 소설이 잃어버린 응당 있어야 할 하나의 중요한 가능성이 숨어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3»
<단순히 작자의 주관을 더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객관의 사실 및 현상(事象)에 대해서도 전혀 그 내부에 개입하지 않으며, 또한 인물의 내부정신에도 개입하지 않고 오직 본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다야마 가타이의「평면묘사」의 주장(『「生」に於ける試み』「早稲田文学」明41(1908) 9)은 작자자신의 대담한 “고백”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지만, 실제로는 화자의 주관은 극도로 억제되어 있었던 데다가, 문말사 또한「~た」를 중심으로 한 제삼자적 객관성으로 가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억제하면 할수록 그 균열점(裂け目) 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인용문 끝부분부터는 화자가 도키오(時雄)를 암묵적으로 변호하려는 뉘앙스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독자는 이러한 판단을 상대화 해가는 작업 또한 가능해지는 것이다(제2부 제3장 참조). 이렇듯 어떤 식으로 객관적인 입장을 가장한다 하더라도 언표주체의 판단, 평가를 제로로 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문단을 떠들썩하게 만든 자연주의 진영의 묘사론에 있어서 몇 번씩이나 걸쳐「주관」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가타가미 덴겐(片上天弦)이『자연주의의 주관적 요소』(「早稲田文学」明43(1910) 4)에서 <자연주의는 주관의 동요와 고민을 그 근저정신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주관의 동요와 고민에 대한 만족을 얻을 정도의 힘있는 인생관에 기반하지 않는 이상, 물질적 인생관에 기초한 객관본위(客観本位)의 문학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조잡한 말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주관적 요소는 자연주의문학의 근본으로써 가장 중요한 요소다.>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꽤 기이하게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과학적 실증정신에 뒷받침된 내추럴리즘 본래의 이념과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정확하게」라는 덕목으로 치환되어 ‘고백=사소설’이라는 길을 개척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문학사의 구조적 결함으로 공공연하게 지적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낭만주의문학이 발달하지 않은 채로 자연주의를 수용한 탓에 고백적인 요소가 그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말았다고 하는 ‘일본 근대의 “미성숙”’이라는 비판의 패턴도 바로 여기서부터 발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서술했던 관점에 비추어보면, 장면에 내재적으로「말하는 것(語ること)」과 외재적인 시점으로「그리는 것(描くこと)」사이를 ‘얼마만큼 절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사태의 본질이 숨겨져 있던 것 아닐까. 예를 들어, 시마무라 호게쓰(島村抱月)는『문예상의 자연주의』(「早稲田文学」明41(1908) 1)에서 다음과 같은 표를 제시하고 있다.
— 순(純)객관적 — 사실적 — 본래 자연주의 — 소극적 태도 —
묘사의 방법태 통일목적—진(真)
— 주관삽입적 — 설명적 — 인상파 자연주의 — 적극적 태도 —
<본래 자연주의>에 대해 <주관삽입적> <설명적>이라고 하는 개념이 설정된 사실은 상징적인 것으로서 방금 전까지의 문맥에 따르면 대화적, 실황중계적인 서술자의 판단을 서술로 ‘얼마만큼 집어 넣을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이 역시 그 배후에 남아있는(揺曳) 것처럼 생각된다. 「~た」세계를 기본으로 장면에 내재하는 시점에 어떻게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さりげなく)” 삽입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언문일치체 소설의「사실」의 성패가 달려있었던 것이다.
자연주의의 본격화에 앞서, 독자적인 언문일치체를 실천했던 계보로「사생문(写生文)」이 있다.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는「사생」의 제창을 하이쿠(俳句), 단가로 실천하고, 후에 이것을 산문에 적용하며 메이지30년대 전반에 사생문운동을 일으켰다. 시키의 사후, 다카하마 교시(高浜虚子)가 하이쿠 잡지인「ホトトギス」를 무대로 언문일치체 소설을 실천해 나갔으나, 그 특징은 후타바테이 시메이가 개척한 문말사「~た」를 제거하여 현재진행형을 사용하고,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배열한다는 점에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현장의 시점만을 특화 하려 하면, 역으로 소설의 시간구성이 기술적으로 곤란하게 되기도 한다. 설령 줄거리에 환원할 수 있는 이야기내용이 동일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야기 하는 순서가 바뀌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야말로 소설 플롯이 담당할 역할인 것이며, 적어도 사생문적 실황중계로 장편소설을 구성하기는 아주 어렵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소세키는 교시가 추천 해준대로 사생문의 일환이 되는 소설 데뷔작『吾輩は猫である』를「ホトトギス」에 게재했는데(明38(1905) 1~明39(1906) 8), 당연한 말이겠지만 고양이의 눈을 빌린 실황중계를 담은 이 작품에는「~た」가 사용되는 일이 거의 없다. 고양이를 통해 보이는 세계가 보이는 그대로, 현재형 시제로 이야기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장편소설의 통괄적 시점을 명확히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연재도중 고양이에게 <독심술>을 할 수 있게 하여 인간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등(9), 이러저러한 궁리를 더해가게 된다. 당초의 예정에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요청에 응해서『吾輩は猫である』가 장편화 된 프로세스는 언문일치체의 실황중계 시점과 통괄적 서술의 시점을 어떤 식으로 절충시켜 갈 것인지에 대한 시행착오의 실천이 되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아울러, 사생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소세키의 초기작품『草枕』(「新小説」明39(1906) 9)의 서두 부근에 한 구절을 참조해보면 역시「~た」가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작중에서 화가는 등장인물인데도 오히려 <비인정(非人情)>을 표방하며, 히로인인 나미(那美)에게 방관적인 행동을 관철하고 있다. <평범한 소설가들처럼 제멋대로 근본을 찾아 심리작용으로 들락날락하거나, 인간갈등을 새삼스럽게 자꾸 문제 삼는 행위를 하게 되면 속되어 진다>라는 언문은 어떤 의미로는 상술한 다야마 가타이의「평면묘사」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蒲団』의 주인공이「소설가」로서의 자기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이 부여되어 있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草枕』에서는 화가가 <비인정>을 표방하는 것을 담보로 해서 객관적 시점과 당사자 시점 사이의 굴절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술은 시종일관 사생문적 실황중계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으며 문말사「~た」역시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화가가 결국「그림」을 작중에서 완성시키지 못한 채로 끝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징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실황중계적인「사생문」그 자체는 결국「소설」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우의를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인정>을 관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중인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괄하는 주체여야만 한다. 중편소설 이상의 구성으로는 아무래도 역시「~た」로 표상되는 통괄적인 시점이 필요해지게 되는 것이다.
소세키가 장편소설에서「~た」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三四郎』(「東京朝日新聞」明41(1908))부터다. 주인공 산시로가 상경한 직후의 장면의 문말만을 주목해보면 과거의「~た」로 끝나고 있는 경우와 현재형으로 끝나고 있는 경우가 거의 반반으로, ‘산시로의 눈에 도쿄가 어떻게 보이는가’ 라는 장면에 입각한 시점과 ‘산시로가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라는 결과적 통괄이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형과 과거형이 번갈아 등장하는, 생각해보면 몹시 기묘한 이 “혼교기술(混交技術)”은 그 뒤에 나온 언문일치체 소설에 하나의 양식으로 제시되었으나, 소세키의 경우에는『それから』(「朝日新聞」明42(1909)),『門』(「東京朝日新聞」明43(1910))과 장편소설을 연재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현재형은 줄고, 압도적인 비율로 문말에「~た」가 늘어나게 되었다. 대신에 이것은 현장에 있는 당사자의 시점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소세키는 등장인물 상호간의 대화를 큰 폭으로 늘림으로써 임장감을 연출하는 방법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소세키의 경우,「~た」의 증가와「 」에 의한 등장인물 상호간의 대화증가 사이에는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두 요소가 칼로 자른 듯 분리되어 가는 것이 과연 서술의 “진화”라고 할 수 있을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보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분리가 진행되면 될수록 등장인물은 독자로부터도, 화자로부터도 독립해 멀어져 가는 숙명에 처하게 되는데, 이 사실은『行人』(「朝日新聞」大元(1912)~大2(1913)),『草枕』(「朝日新聞」大4(1915)),『明暗』(「朝日新聞」大5(1916))로 나아감에 따라 주인공들이「개(個)」의 폐쇄(閉塞)상황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내용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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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40년대부터 다이쇼 초기에 걸쳐 언문일치문체는「~た」가 우세한 형태로 전개되어 갔으나, 그 큰 추진력이 되는 것이 백화파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 일인칭이었다. 그들은「自分」을 주어로 하여 문장의 종지를거의「~た」로 통일하는 형태를 일반화하였고 이것이 이후에 언문일치체의 표준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実篤)의『お目出たき人』(明44(1911) 2)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한 구절의 경우를 놓고 봤을 때, 거의 초등학생의 작문을 연상시키는 듯한 이러한 문체를 이쿠다 죠코(生田長江)가 자연주의가 악전고투 끝에 획득한「묘사」이전의 치졸한 문체라고 매도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묘사논의의 축적에 의해 모처럼 고심해서 만들었을 암묵적인 합의—삼인칭적인 세계 제시와 일인칭적 판단과의 절충—가 <自分>의 주관을 전면적으로 표출해버리는 것으로 아주 간단히 무너져버릴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의해서 유심히 읽어보면 백화파가 사용하기 시작한 <自分>은 예를 들면, 예전의 돗포의『武蔵野』의 <自分>과 비교했을 때 같은 일인칭이라도 크게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무샤노코지나 시가 나오야가 사용한 <自分>은 독자를 부르거나 스스로 서술내용의 해설을 시작하는 일은 거의 없고, 서술자가 사정한 독자의 존재의 지수는 매우 낮다. 거기에서 그리는「현재」의 판단은 가능한 한 억제되어 있는데 그것이 <自分>을 내세우는 강한 주관과, 「~た」로 끝나는「かつて―そこに―あった」객관세계 제시와의 기묘한 동거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가 나오야의 초기 일인칭소설인『網走まで』(「白樺」明43(1910) 4)의 경우에도 草橋와 비교해보면 완성된 원고에서는 집필시의 현재 판단이 꼼꼼히 제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시도했던 것은 서술의 현재를 굳이 바깥으로 내지 않은 채「自分は~した」라는 종지형을 사용함으로써「그 당시의 현재(其時の現在)」(『大津順吉』「中央公論」大元(1912) 9)에 밀착하여「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를 연출해가려는 방법이었다. 일반적으로 백화파는 서술자의 주관을 전면으로 표출하는 문체를 확립했다고 하는데, 독자를 직접 부르는 것을 삼가려는 억제가 일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시종일관 자기가 자기에게만 보고하는「혼잣말」과 같은 구어라고 해도 무방하다. 다이쇼기 후반에는 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의 대립이 의미를 잃고 문단은 곧 시가 나오야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이는 구어에서 대화적 요소를 제거한 독백체형식이 정착하고,「묘사」에 관한 최대공약수적 합의가 형성되어가는 과정과도 상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굳이 반복해 말하자면 억제하면 할수록,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 역시 다시금 부상하게 된다. 방금 상술 한 듯이 소설 문체에는 거기 상정된 청자(독자)의 존재—이인칭적 세계—가 어디까지 서술에 혼재해 있는가 하는 지수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되며 오히려 이것을 제로에 가깝게 만드는 데에 하나의 이념이 있다고 한다면 응당 그 역 또한 성립될 것임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 우노 고지(宇野浩二)의『蔵の中』(「文学世界」大8(1919) 4)에는 <이야기의 앞 뒤가 뒤바뀌어서 종종 기로(岐路)에 들어서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부디 저의 끝 없는 이야기를 여러분 머리로 적당히 분별해 알아들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이야기의 전후가 뒤바뀝니다, 기로에 들어섭니다, 라기보다는 당치도 않은 곳으로 튑니다. 부디 자유롭게 취사(取捨)하고 안배(按排)하여 들어주십시오>같은 형태로 실제로는 묵독(黙読)하고 있을 독자에게「이야기(話し)—듣는다(聞く)」의 장(場)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끔 연출해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이야기 내용에는「~ました」를 이용하여 독자를 부르는「~ます」를 꽤 명확히 가려 쓰고 있는데 이러한 부름에 의해 역으로 이야기내용으로써 봉인되었을 세계가 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결과를 남기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른바「~た」로 표상되는 세계와의 분쟁(争い)과정 그 자체가「말」의 호흡의 재생으로 이어지는 매우 흥미로운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백화파에 의해 하나의 극단적 정형이 완성되었기에 비로소 이러한 안티테제 또한 가능해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와야 사자나미의『日本昔噺』에는「~ました」와 거의 같은 횟수만큼「~ましたとさ」라는 구승문예적 문말표현이 사용되고 있었다. 역으로「かつて―そこに―あった」세계의 제시와 이러한 가장을 일깨우는 독자와의 응답관계—아마도 거기에는「묘사」와「서술」과의 영원한 갈등이 내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가역적 왕복운동에 시선을 집중해보는 것으로 각각의 소설이 어떤 시공간을 구축하려고 했는지가 부각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텍스트】
安藤宏,『近代小説の表現機構』, 岩波書店, 2012
【단행본】
스즈키 사다미, 김채수 역,『일본문학의 개념』, 보고사, 2001
김채수 편,『韓國과 日本의 近代言文一致體 形成過程』, 보고사, 2002
스즈키 토미, 한일문학연구회 역,『이야기된 자기』, 생각의 나무, 2004
【논문】
井上敏夫,「国語教科書の変遷」,『国語教育科学講座 国語教材研究論』第5巻, 全国大学国語教育学会編 ,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