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오가이 - 무희
석탄은 이미 다 쌓았다. 중등실에 있는 테이블의 주위는 매우 조용해서 백열등의 빛이 필요 이상으로 밝다. 오늘 밤은 항상 여기에 모여 카드 동료들도 호텔에 묵어서 배에 남아있는 것은 나 혼자 뿐이다. 5년 전의 일이었지만 여태까지의 희망이 이루어져 서양으로 가라는 관명을 받고 이 사이공 항구까지 왔을 때는 눈에 비치는 것들, 귀에 들리는 것들이 전부 새롭지 아니한 것이 없고 붓 가는 대로 기록한 기행문에 매일 수천 단어를 늘어 놓아서 인지 당시 신문에 실려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며 유행하였으나 지금이 되어 다시 생각해보면 미숙한 사상과 분수를 모르고 멋대로 지껄인 말들, 그렇지 않더라도 당연한 동식물과 광물 또는 풍속 까지 새롭고 신기한 듯이 기록했던 것을 세상 물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봤을까. 이번에는 이제 출발할 때 일기를 쓰려고 산 노트도 아직 백지 상태 인 것은 독일에서 여러 가지 배운 사이에 일종의 태연 자약함을 키워왔기 때문일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따로 이유가 있다.
완전히 동쪽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나는 서쪽으로 건너왔을 적 옛날의 내가 아니라 학문이야말로 아직 싫증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는 하지만 속세의 고통도 알고, 타인 마음의 의지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자신과 자신의 마음마저도 변하기 쉬운 것을 뼈저리도록 이해 한 것이었다. 어제 좋았던 것이 오늘의 무용한 자신의 그 순간의 느낌을 누구에게 말로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일기를 쓸 수 없는 이유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따로 이유가 있다.
저 브린지시 항구를 나오고 나서 벌써 이십여 일이 지났다. 보통이라면 생면부지의 손님과도 말을 주고 받으며 여행의 시시함을 서로 위로하는 것이 항해이라는 것의 통례라고는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를 붙여 선실 안에 틀어박혀 함께 여행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는 일이 적은 것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회한에 머리를 싸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회한은 처음 한 조각의 구름처럼 내 마음을 스쳐 스위스에 있는 산의 색도 보이지 않게 하고 이탈리아의 사적에도 마음을 남기지 않게 하여 얼마 전에는 세상이 싫어지고 스스로를 하찮다고 여기게 되어 창자가 하루에 아홉 번이나 뒤집히는 것 같은 고통을 내게 짊어 지워 지금은 마음 속에 굳어져 아주 작은 그림자가 되었다고는 하나 문장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를 볼 때마다 거울에 비친 그림자, 말소리에 대답하는 울림과 같이 옛날의 그리운 기분을 한 없이 불러일으켜 왜인지 모르게 내 마음을 괴롭힌다. 어떻게 해서 이 회한을 없애면 좋을까. 혹시 다른 회한이었다면 시를 짓고 단가를 읊은 다음에는 기분이 상쾌해질 법도 하겠지. 이것만은 몹시 깊게 내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밤은 인근에 사람도 없고 남자아이가 와서 전기선 열쇠를 비틀기에는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자 이제 그럼 그 대략적인 이야기를 글로 써보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엄한 가정의 훈육을 받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학문에 뒤떨어지는 일도 없이 구 번의 학관에 다녔던 때도 동경에 나와 대학 법학부에 다녔던 때도 오다 도요타로라는 이름은 항상 클래스의 톱으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자인 나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세상을 살아가는 어머니에게는 더 없는 위로가 되었던 듯 하다. 열 아홉 살 때는 학사의 칭호를 받아 대학이 시작한 이래로 또 없을 명예라고 들으며 한 관청에 근무하며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동경으로 모셔 즐거운 삼 년 정도 보냈다. 모 관청 장의 눈에 들어 서양으로 가서 우리 과의 사무를 조사해라 라고 하는 하명을 받아 나의 이름을 빛내는 것도 우리 집을 빛내는 것도 바로 지금이라는 마음이 용솟음 쳐 쉰을 넘긴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도 그렇게까지 슬프다고 생각 치 않고 멀리 집을 떠나 베를린에 있는 도시로 왔다.
나는 흐릿한 공명심과 스스로를 억제하는 것에 익숙해진 면학 능력을 가지고 홀연히 지금 이 유럽의 새로운 대도시 한 가운데에 선 것이다. 이 무슨 빛인가, 나의 눈을 자극하는 것은. 이 무슨 색깔인가, 나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은. 보리수 아래라고 번역할 때는 그윽하고 조용한 분위기겠지 생각되지만 이 큰 도로가 곧장 통과하는 운더 덴 린덴에 와서 양쪽의 돌로 된 보도를 지나는 남녀들을 보라. 가슴을 펴고 어깨를 높이 한 사관이 아직 빌헬름 1세가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창문에 기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색상으로 단장한 정장을 하고 있는 용모 좋은 소녀가 파리 풍 옷차림을 하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눈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차도의 아스팔트 위를 소리도 내지 않고 달리는 다양한 마차, 구름에 우뚝 솟은 건물이 조금 끊긴 곳에는 맑게 개인 하늘에 소나기 소리를 내며 넘쳐 흐르는 분수의 물, 멀리 바라다보면 브란덴부르크 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녹색 가지가 서로 엇갈려 있는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개선 탑의 여신상 등, 이 많은 것들이 눈 앞에 펼쳐져 처음으로 여기에 온 사람이 거기에 응대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내 자신의 가슴 속에는 설령 어느 곳에 왔다고 하더라도 의미 없이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리라 결심했기에 항상 나를 사로 잡는 갖가지 외부 세계의 사물을 차단하고 있었다.
내가 벨을 울려 면회하여 공식 소개장을 내고 동쪽에서 온 뜻을 알리자 프러시아의 관공서 직원들은 모두 흔쾌히 나를 맞아 공사관에서의 절차도 무사히 끝난다면 어떤 것이라도 가르쳐 주고 전해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다행인 것은 내 고향에서 독일어 프랑스어를 익혀 두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언제 어디서 이렇게 배울 수 있었느냐고 질문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일이 빌 때마다 전부터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아 두었기 때문에 이 땅의 대학에 들어가 정치학을 습득하려고 이름을 명단에 적어 달라고 했다.
한 달 두 달 흘러가는 동안에 공적인 협의도 끝나고 조사도 점차 진척 되어 갔으므로 서두를 것은 보고서에 적어 보내고 그렇지 않은 것은 기록해 두어 수중에 두어 마침내는 그것은 몇 권의 책이 되었다. 대학 쪽에서는 어린 마음에 그려 두었던 것처럼은 정치가가 될 만한 특별한 학과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두 세 과목의 법률 학자의 강의에 출석 하기로 하고 수업료를 납부 하고 가서 청강했다.
이렇게 몇 년 정도는 꿈처럼 지났는데 때가 되면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욕망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들이 신동이라고 칭찬하는 것에 기뻐하며 태만하지 않고 공부했으며 관장이 좋은 일꾼을 얻었다고 격려해 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일해오던 그 때까지는 그저 수동적, 기계적인 인물이 되었음을 스스로 자각하지는 못했다. 이제 스물 다섯 살이 되어 오랫동안 이 자유로운 대학 바람을 맞고 있었던 때문 일까, 마음 속은 어딘지 모르게 평온 하지 않고 저 안 깊숙이 숨어 있던 진정한 자신은 점점 나타나 어제까지의 자신이 아닌 자신을 몰아 세우는 듯 했다. 나는 자신이 지금의 세상에 웅비해야 할 정치가가 되기에도 어울리지 않고 또한 법률을 암기하여 명쾌하게 판결을 내릴 법률가가 되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기에 나의 어머니는 나를 살아있는 사전으로 만들려고 했고 내가 근무하는 부처의 관장은 나를 살아있는 법률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다. 사전은 그래도 견딜 수 있지만 법률인 것은 참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자잘한 문제도 너무 많이 정중하게 대답했던 내가 이 무렵부터 부처의 관장에게 보내는 문서에는 계속해서 법제도가 너무 세밀한 곳까지 구애 되어서는 안 된다고 논하며 일단 법의 정신을 입수했다면 분분한 모든 것들은 대쪽을 자를 수 있다는 등과 같이 호언 장담했다. 또한 대학에서는 법학 강의를 방치하고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생겨 겨우 재미를 느끼는 경지에 도달했다.
부처의 관장은 원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려고 했었을 것이다. 독립 된 사상을 품고 평범하지 않은 낯짝을 한 사내를 어찌 기뻐할 것 인가. 위태로운 것은 나의 당시의 지위였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아직 자신의 지위를 빼앗기에 충분치 않았는데 평소 베를린 유학생 중에 어떤 세력의 일파와 나 사이에 유쾌하지 않은 관계가 있고 그들은 나를 짐짓 의심하여 결국 나는 하지도 않은 일을 고자질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거기에 아무런 원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내가 함께 맥주 잔을 들고 않고 당구 큐도 취하지 않는 것을 완고한 마음과 욕망을 억제 힘 때문이라고 결론 짓고 한편으로는 조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 이유 라고 하는 것은 자신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었을까. 내 마음은 그 합환이라고 하는 나뭇잎과 닮아서 무엇인가가 닿으면 줄어들어 피하려고 한다. 내 마음은 처녀와 닮았다. 내가 어려서부터 연장자의 가르침을 지켜 학문의 길을 따라 갔던 것도, 관공서 근무의 길을 걸었던 것도 모두 용기가 있어 그러게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외부의 사물이 두려워 스스로 자신의 손발을 묶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도 자신이 능력 있는 인물임을 의심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의 마음이 그것을 잘 견딜 것이라는 것을 깊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시 적인 것. 배가 요코하마를 떠날 때까지 훌륭한 호걸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멈출 수 없는 눈물로 손수건을 적셔 있던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것이야 말로 나의 본성 이었다는 것이다. 이 마음은 천성이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생긴 것일까.
그들이 바보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질투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 아닌가? 이 나약하고 가엾은 마음을.
울긋불긋 얼굴을 치장하고, 현란한 색깔의 옷을 입고, 다방에 앉아 손님을 끄는 여자를 봐도 가서 말을 걸 용기도 없고, 길이 높은 모자를 쓰고 안경에 코를 누르고 프러시아에서 귀족 같은 콧소리로라도 말하는 사람들을 봐도 가서 함께 놀 용기도 없고, 이러한 용기가 없기 때문에, 그 활발한 동향 사람들과 사귀자 라고 말 해 볼 수단도 없었다. 이렇듯 사람 사귀는 데 재주가 없었기에 저 사람들은 그저 나를 바보 취급하고 나를 질투할 뿐 아니라 나를 시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누명을 쓰고 잠시 동안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까닭이었다.
어느 날의 해질녘이었는데 나는 운더 덴 린덴을 지나 몬비슈가에 있는 하숙집으로 돌아오려고 크로스텔 지구의 낡은 절 앞에 왔다. 나는 저 등불의 바다를 건너와 이 좁고 어스름한 지구로 들어와서 계단 위 난간에 널어놓은 이불, 속옷 등을 아직 걷어 들이지 않은 민가, 구레나룻이 긴 유태교도인 할아버지가 문 앞에 서성이는 선술집, 하나의 사다리는 바로 위로 이어지고 또 다른 사다리는 움막집의 대장간으로 통하고 있는 셋집 등을 향해 오목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이 3백 년 전의 유적을 바라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잠시 동안 멈춰선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지금 이 장소를 지나려고 할 때 닫힌 절 문에 기대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우는 한 소녀가 있는 것을 보았다. 나이는 열예닐곱 되었을까. 머리에 쓴 스카프로부터 살짝 나온 머리카락 색은 엷은 금색으로 입고 있는 옷은 때가 탔지만 더러운 모양새는 아니었다. 내 발소리에 놀라 돌아본 얼굴은 내게 시인의 기량이 없어 이것을 말로 옮기지는 못 하겠다. 푸르고 맑은 무언가 애원하듯 우수를 머금고 이슬을 반 정도 담은 기다란 속눈썹에 가리어져 있는 그 눈은 왜인지 한 번 돌아본 것만으로도 조심성 많은 내 마음 속의 깊은 곳까지 꿰뚫는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하지도 못 할 만큼 깊은 슬픔과 조우하여 주위를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여기에 서서 울고 있었던 것이겠지. 나의 겁 많은 마음이 가련한 마음이 져서 나는 나도 모르게 곁으로 다가가 “왜 울고 있어요. 이 땅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이라서 오히려 힘이 되어주기 쉬운 일도 있을 텐데요.” 라고 말을 걸었으나 스스로의 대담함에 놀랐다.
그녀는 놀라서 나의 노란 얼굴을 지켜보았는데 나의 진지한 마음이 나타났는지 “당신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 사람 같이 잔혹하지는 않겠죠. 또 내 어머니처럼요.” 잠시 동안 말랐던 눈물샘은 또 넘쳐 흘러 귀여운 뺨에 흘러 떨어졌다.
“나를 구해주세요.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 되어버리려고 하는 것을요. 어머니는 내가 그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를 때렸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내일은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집에는 돈이 별로 없어요.”
그 후로는 훌쩍거리는 소리만 났다. 내 시선은 고개 숙인 소녀의 떨리는 목덜미에 집중되었다. “당신 집으로 보낼 테니 우선 마음을 좀 진정해요. 다른 사람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요. 여기는 도로니까.” 그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내 어깨에 기대왔으나 이 때 문득 머리를 들어 나를 처음 본 것과 같이 부끄러워하며 내 곁에서 물러섰다.
사람들이 보는 것이 싫어서 빠른 걸음으로 가는 소녀의 뒤를 따라 절간 맞은 편에 커다란 대문을 들어가면 부분부분 깨진 돌 계단이 있다. 이것을 올라 사층에 허리를 굽혀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대문이 있다. 소녀는 녹슨 철사 끝을 돌렸는데 손을 대어 세게 잡아 당겼더니 안에는 목이 쉰 노파의 목소리가 나며 “누구냐”하고 묻는다. 엘리스가 다녀왔어요 라고 대답 할 틈도 없이 대문을 난폭하게 잡아당겨 연 것은 머리가 반은 하얗게 샌, 고약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가난한 고통의 흔적이 이마에 새겨진 노파로 나사(양털로 짠 직물)로 만든 옷을 입고 더러워진 구두를 신고 있었다. 엘리스가 내게 가볍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것을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세게 닫았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으나 문득 램프의 불빛에 비춰 문을 보면 베른스트 바이게르트 라고 옻칠로 쓰고 그 아래에 재봉사라고 덧붙여 써있었다. 이것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녀의 아버지의 이름이겠지. 안에서는 말다툼 하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렸으나 또한 조용해지고 문이 다시 열렸다. 방금 전까지의 할머니는 정중하게 자신이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을 사과하고 나를 맞았다. 문 안은 부엌으로 오른쪽 낮은 창문에 새하얗게 씻은 삼베를 걸고 있다. 왼쪽에는 어설프게 쌓아 올린 벽돌 아궁이가 있었다. 맞은 편의 방 문은 절반쯤 열려 있었는데 안에는 삼베로 덮은 침대가 있었다. 누워있는 것은 죽은 사람 일 것이다. 아궁이 옆에 있는 문을 열고 나를 안내했다. 이 장소는 소위 말하는 만사르도 거리에 면해있는 방이므로 천장도 없었다. 구석에 있는 지붕 뒤에서 창문을 향해 대각선으로 내려간 대들보를 종이에 붙인 아래에, 일어서면 머리를 부딪힐 곳에 침대가 있다. 중앙에 있는 책상에는 아름다운 천을 걸어 위로는 책 한두 권과 사진 앨범을 늘어놓고 도자기로 된 꽃병에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게 비싼 꽃다발을 꽂아두었다. 그 옆에 소녀는 부끄러운 듯 서 있었다.
그녀는 무척 아름답다. 우유 빛깔의 얼굴은 방에 불빛에 비쳐 살짝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손발의 가냘프고 낭창낭창한 모습은 가난한 집 딸 같지 않았다. 노파의 방을 나온 후 소녀는 조금 사투리 섞인 투로 말했다. “용서해주세요. 당신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배려 없는 마음을. 분명 당신은 좋은 사람일거예요. 결코 나를 미워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죠. 내일로 다가오는 아버지의 장례, 믿고 있었던 샴베르히, 당신은 그에 대한 것을 모를 테죠. 그는 빅토리아 극장의 단장이에요. 그에게 고용되고 벌써 이 십 년이나 되었기에 당연히 우리들을 구해주리라 믿고 있었는데 그가 곤란해 하고 있는 상황을 파고 들어 염치없는 트집을 잡을 줄이야. 나를 구해주세요. 돈은 조금씩 갚아 갈게요. 설령 내가 굶더라도. 그래도 안 된다고 한다면 어머니의 말씀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몸을 떨고 있었다. 그 올려다 본 눈에는 다른 사람이 거절할 수 없는 교태가 있었다. 이 눈의 힘을 알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은 모르는 걸까.
내 주머니에는 두세 마르크의 은화가 있지만 그러면 충분할 리가 없기에 나는 시계를 풀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이것으로 급한 일은 해결하십시오. 전당포의 심부름꾼이 몬비슈 거리 삼 번지에 오오타를 찾아 오는 때에는 반드시 대가를 건넬 테니."
소녀의 모습이 놀라고 감동 한 듯하여 내가 이별을 위해 내민 손을 입술에 대고 똑똑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을 내 손등에 쏟았다.
이 무슨 좋지 못한 인과란 말인가. 이 은혜에 사례하려고 스스로 내 하숙집에 온 소녀는 쇼펜하우어를 오른쪽에, 시라를 왼쪽에 두고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독서 하고 있는 나의 창문 아래에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때를 처음으로 나와 소녀와의 왕래는 잦아 가고 동향의 인간에게조차 알려졌기에 그들은 지레 짐작으로 나를 색정으로 댄서의 무리 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아직 순수한 즐거움 밖에 없었는데도.
그 이름을 대는 것은 삼가겠지만 동향의 인간 중에는 구태여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서 마침 내가 극장을 자주 드나들며 여배우와 교제하고 있는 것을 부처의 관장이 있는 곳에 통보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학문의 길과는 꽤 떨어진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알고 나를 미워하고 있던 부처의 관장은 의향을 공사관에 전달하여 나를 면직하고 관직에서 해임시켰다. 공사가 이 명령을 전달할 때 내가 말한 것은 그대가 만일 즉각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여비는 반드시 마련해주겠지만 만일 아직 여기에 머물겠다고 한다면 관청의 도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주일간의 유예를 청하였고 이것저것 고민하는 동안 내 인생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이 두 통은 거의 같은 시기에 온 것이었는데 한 통은 어머니의 자필이었고 한 통은 친적인 모씨가 어머니의 죽음을, 내가 더할 나위 없이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였다. 나는 어머니의 편지에 적혀있던 내용을 여기서 반복할 수가 없다. 눈물이 날 것 같아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와 엘리스와의 교제는 이 때까지 곁눈질로 보는 것보다 결백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가난한 탓에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열 다섯 살 때 춤 선생님이 하는 모집에 응하여 이 부끄러운 기술을 배우고 강습을 마친 후 빅토리아 극장에 나가 지금은 팀에서 두 번째 위치를 차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인 하크렌델이 이 세상의 노예라고 말했듯이 덧없는 것이 댄서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보잘것없는 월급에 메여 낮에는 리허설을 하고 밤에는 무대에 올라 혹사당하며 분장실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분칠을 하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지만 극장 밖에서는 일 인분의 의식(衣食)도 부족하므로 부모 형제를 부양하는 사람은 그 고생이 얼마나 힘든 것 일까. 그래서 그녀의 동료 중에 천하디 천한 일에 손을 물들이지 않는 것이 드물다고 하는 것이다. 엘리스가 그러한 일을 피해 온 것은 온순한 성격과 확고한 아버지의 보호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손에 잡힌 것은 천한 코르포르타쥬라는 책 대여점의 소설 뿐인 것을, 나와 알게 된 뒤부터 내가 빌려준 책을 읽고 겨우 교양도 알고 말에 섞인 사투리도 고치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건네는 편지에도 점점 오타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무엇보다 사제지간의 교제가 생겨난 것이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실직을 들었을 때 그녀는 낯빛이 바뀌었다. 나는 그녀와의 일이 이 일과 관련되어 있던 것을 숨겨 두었는데 그녀는 나를 향해 어머니에게는 이 일을 함구해 주세요 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내가 학자금을 잃은 것을 알고 나를 등한시 할 것을 두려워해서였다.
여기에 자세히 적는 것도 필요 없지만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갑자기 더 깊어져 결국에는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은 이 시기였다. 내 한 몸의 대사건이 눈 앞에 가로 놓여있고 정말로 위급한 존망의 때라고 하는데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임에 틀림 없겠지만 내가 엘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처음 서로를 보았을 때부터 얕은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 나의 불행을 동정하고 또 이별을 슬퍼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가라앉은 얼굴에 귀밑머리가 풀어져 흘러내려 있었다. 그 아름답고 애처로운 모습은 내 비통한 감개를 자극하여 평범하지 않은 상태가 된 뇌를 직격했다. 멍한 가운데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공사와 약속한 기일은 다가오고 내 운명도 절박해졌다. 이대로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학문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오명을 입은 몸에 출세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머무른다고 하여도 학비를 얻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이런 때 나를 도와준 것은 지금 나와 독일 동행의 친구 중 한 명인 아이자와 켄키치였다. 그는 동경에서 이미 아마가타 백작의 비서관이었는데 내 면직이 관보에 난 것을 보고 모 신문사의 편집장을 설득하여 나를 회사의 통신관으로 고용해 베를린에 머물며 정치나 학술에 관한 것 등을 보도하게 해 주었다.
회사로부터 보수는 부족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사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가게도 바꾼다면 어떻게든 생황은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정성스럽고 착실함을 보여주며 나를 도와준 것은 엘리스였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어머니를 설득했던 것인지 나는 그들 모녀의 집에 몸을 맡기게 되어 엘리스와 나와는 언제라고 할 것도 없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수입을 합쳐 힘든 중에도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아침에 커피를 다 마시면 그녀는 리허설을 하러 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집에 남았다. 나는 쾨니히 가에 있는 건물의 폭이 좁은 안 쪽으로만 뻗어있는 매우 긴 휴게소에 가서 온갖 종류의 신문을 읽고 연필을 꺼내 들고 이것 저것 재료를 모았다. 지붕으로 나 있는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방에서 정해진 직업도 없는 젊은이, 많지도 않은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본인은 놀고 먹는 노인, 거래처 업무의 틈을 타 쉬는 상인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차가운 돌로 된 탁자 위에서 바쁜 듯이 붓을 놀려 하녀가 가져다 주는 한 잔의 커피가 식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몇 종류나 되는 빈 신문이 한 쪽 벽 구석에 길고 가느다란 널조각에 끼워져 널려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일본인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볼까. 또 한 시가 가까워지면 리허설에 간 날에는 귀가 길에 들려서 나와 함께 가게를 나오는 이 보통 이상으로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 댄스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은 소녀를 이상히 여기며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학문은 퇴색해갔다. 다락방의 등불이 하나 희미하게 타오르고 엘리스가 극단에서 돌아오면 의자에 앉아 바느질 하는 등 하였고 나는 옆의 책상에서 신문의 원고를 썼다. 옛날의 법령 조목들을 종이 위에 긁어 모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활발한 정계의 움직임, 문학이나 미술에 관련된 새로운 경향의 비평 등, 이런 것 저런 것들을 종합하여 힘이 미치는 한 뵈르네보다는 오히려 하이네을 배우고 생각을 정리하며 여러 문장을 만들고 있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빌헬름 일세와 프레데릭 삼세의 붕어가 있고 새로운 황제의 즉위와 비스마르크 후작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 등 같은 문제에 대해 각별히 상세한 보고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무렵부터 생각했던 것보다 바빠서 많지도 않은 장서의 페이지를 넘기고 이전의 학업을 되돌아 보는 것도 어렵고 대학의 학적은 아직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수업료를 납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단 하나의 한 강의조차 듣는 일이 드물었다.
나의 학문은 퇴색해 갔다. 그러나 나는 별도로 어떤 종류의 견식을 넓혔다. 그것이 어떤 것인가 하면 거의 민간에 학문이 보급되어 있는 것에는 유럽 제국 사이에서 독일을 이길 곳은 없을 것이다. 수백 종류의 신문, 잡지에 하나 둘씩 보이는 논의는 매우 수준 높은 것도 많다. 내가 통신원이 된 날부터 지금까지 대학에 자주 다니던 때 길러둔 식견으로 읽고 또 읽고 베껴 쓰고 또 베껴 쓰는 가운데 지금까지 외길만을 달려온 지식은 자연과 총합되고 동향 유학생 등의 대부분은 꿈에도 알 수 없을 경지에 이르렀다. 그들의 동료는 독일 신문의 사설조차 잘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까.
메이지 이십일 년의 겨울은 왔다. 바깥에 큰 길 보도라면 모래도 뿌리고 괭이질도 하겠지만 크로스텔 거리 주변은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걷기 어려운 곳은 보일 테지만 표면 만은 일면으로 얼어 아침에 문을 열면 굶주려 얼어 죽은 참새가 떨어지는 것도 불쌍하다. 방을 덥히고 아궁이에 불을 피워도 벽의 돌을 통해 옷의 면을 뚫는 북유럽의 추위는 꽤나 견디기 힘들었다. 엘리스는 이틀, 삼일 전날 밤에 무대에서 쓰러졌다고 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돌아 왔지만 그 때부터 기분이 나쁘다며 휴식하고 뭐든 먹기만 하면 토하는 것을 처음 입덧이라고 눈치 챈 것은 어머니였다. 그렇지 않아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내 장래였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오늘 아침은 일요일이라 집에 있는데 마음은 즐겁지 않다. 엘리스는 몸져 누울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난로 옆에 의자에 기대어 말도 별로 하지 않는다. 이 때 문 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에 있던 엘리스의 어머니가 우편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건넸다. 보니 언제 한 번 본 적있는 아이자와의 필적이었는데 우표는 프러시아 것이었고 소인은 베를린으로 되어있었다. 의아해하면서도 열어서 읽어보니 ‘급한 용무로 미리 알릴 수단이 없었는데 오늘 밤 여기에 도착한 아마가타 대신을 따라 나도 왔다. 백작님이 자네를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니 빨리 와주게. 자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도 지금 뿐일 걸세. 마음이 급하여 용건만을 전하네.’ 다 읽은 후의 망연한 얼굴을 보고 엘리스는 말했다. “고향에서 온 편지인 건가요. 설마 나쁜 소식은 아니죠?” 그녀는 예의 신문사 보수에 관한 서신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아니, 신경 쓰지마. 당신도 이름을 알고 있는 아이자와가 대신과 함께 이곳으로 와서 나를 부르고 있는 거야. 서두르라고 하니 지금 당장 가봐야겠어.”
귀여운 자녀를 떠나게 하는 어머니도 이렇게까지 배려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을 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엘리스는 컨디션이 나쁜 것을 참으며 일어나서 셔츠도 특히 흰 것으로 골라주고 정성스럽게 보관해 둔 프록코트라고 하는 두 줄 버튼의 옷을 꺼내 입히고 넥타이조차도 나를 위해 본인이 메주었다. "이제 보기 흉하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거예요. 내 거울에 비쳐 봐요. 왜 그렇게 재미없는 얼굴을 보여주는 거예요.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조금 태도를 바꿔서 "하지만 이렇게 복장을 새로이 하고 계신 것을 보면 나의 오오타로 씨는 보이지 않네요." 또한 조금 생각하며 "만약 부자가 되시는 날이 오더라도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내 상태가 나쁜 것이 어머니 말씀대로가 아니더라도. "
"뭐야, 부자라니." 나는 미소 지었다. "정치 사회에 나오는 것 따위의 희망을 버리고 몇 년이 지났는지. 대신은 보고 싶지도 않아. 단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야." 엘리스의 어머니가 부른 일등 마차는 삐걱대며 눈길을 창문 아래까지 왔다. 나는 장갑을 끼고 조금 더러운 코트를 등에 걸치고 손으로는 모자를 든 채 엘리스에게 키스하고는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는 얼어 붙은 창을 열고 흐트러진 머리를 북풍에 휘날리며 내가 탄 차를 배웅했다.
내가 차를 내린 것은 카이저 호프의 입구였다. 보이에게 비서관인 아이자와가 묵고 있는 방의 호수를 물어 오랜 시간 밟아보지 못 한 대리석 계단을 올라 중앙의 기둥에 비로드를 씌운 쇼파를 놓고 정면에는 거울을 세워둔 로비로 들어갔다. 코트를 여기에서 벗고 복도를 따라 방 앞까지 갔지만 나는 조금주눅이 들었다. 함께 대학에 있을 적에 나의 품행이 단정했던 것을 격찬한 아이자와가 오늘은 어떤 표정을 하고 마중 나올 것인가. 방에 들어가 서로 마주 보고 보니 체형이야말로 옛날에 비하면 살이 붙어 늠름해졌지만 변함없는 쾌활한 성격은 내 실수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별한 후의 기분을 상세하게 말할 틈도 없이 이끌려 대신과 접견하여 의뢰 된 받은 것은 독일어로 기록 된 문서의 급한 것을 추려 번역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문서를 받아 대신의 방을 나오고 나서 아이자와는 나중에 와서 나와 점심을 함께 하자고 했다.
식탁에서는 그가 많이 묻고 내가 많이 답했다. 그의 인생은 대체로 평온했지만 불운 불행한 것은 내 처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한 불행의 경위를 듣고 그는 종종 놀랐으나 그다지 나를 책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동년배를 비난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태도를 재차 충고하며 여태까지의 일은 원래 심성을 약하게 타고난 마음으로부터 생긴 것이니까 이제 와서 말해본들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학식도, 재능도 있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소녀 한 사람의 정에 붙들려 목적 없는 생활을 해도 좋을 것 인가. 지금은 아마가타 백작도 단지 독일어를 이용하려는 마음뿐이다. 나 또한 백작이 당시의 면직의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그 생각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백작의 마음 속에서 그 일을 감싸려고 하는 자로 여겨지는 것은 자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을뿐더러 내게 손해가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을 추천하려면 먼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을 보여 백작의 신용을 손에 넣도록 해라. 또한 그 소녀와의 관계는 만일 그녀가 진심이었다고 해도, 만일 교제가 깊어지고 있었다고 해도, 인품과 품위를 알고 한 사랑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일종의 타성에서 발생한 교제이다. 마음을 결정하여 헤어져라, 라고 말했다. 이것이 그가 한 말의 개략이었다.
넓은 해원에서 노를 잃은 뱃사람이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 보는 같은 그것이 아이자와가 나에게 지시한 앞날의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산은 아직 짙은 안개 속에 있어서 언제 당도하게 될지도, 아니, 과연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에 만족을 줄 수 있을지도 명확 치 않다. 가난한 중에도 즐거운 것은 지금의 생활, 버릴 수 없는 것은 엘리스의 사랑. 나의 약한 마음에는 생각을 결정 지을 수단도 없었지만 당분간은 친구의 말에 따르며 이 마음을 끊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지키고 있는 것들을 잃지 않으려 생각하고 자신에게 대적하는 자에게 저항하지만 친구에게 싫다고는 대답 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중 유리창을 꼭 닫고 큰 세라믹 벽난로에 불을 떼고 있는 호텔의 식당을 나왔기에 얇은 코트를 통해 들어오는 16시 한기는 일부러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소름이 끼쳤고 나는 마음 속에도 일종의 추위를 느꼈다.
번역은 하룻밤에 다 끝냈다. 카이저 호프에 다니는 것도 앞으로 점점 잦아 졌는데 처음에는 백작 말도 용무뿐이었으나 나중에는 최근 고국에서 있었던 일 등을 예로 들며 나의 의견을 묻고 때로는 여행 중 사람들이 실수한 이야기들을 하며 박장대소하셨다.
한 달 정도가 지나서 어느 날 백작은 갑자기 나를 향해 "나는 내일 러시아를 향해 출발하기로 되어있네. 따라 오겠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수일 간, 그 공무에 바쁜 아이자와와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이 질문은 갑자기 나를 놀라게 했다. "어찌 하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 부끄러움을 밝히자면 이 대답은 즉시 결단 말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긴 사람이 갑자기 무엇인가를 부탁할 때 순간 그 답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잘 판단하지 못하고 즉시 승낙 해 버리는 일이 있다. 그리고 승낙한 후에 그 실행하기에 어려운 것을 알아채더라도 무리하게 그 때의 마음의 공허였음을 꽁꽁 숨기고 참으며 실행 한 적이 몇 번이나 있다.
이날 번역의 대금에 여행 경비까지 곁들여 주신 것을 가지고 돌아와 번역 대금을 엘리스에 맡겼다. 이것으로 러시아에서 돌아올 때까지의 가계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를 의사에게 보이니 임신했다고 한다. 빈혈의 끼가 있기 때문에 몇 개월인가 알아 채지 못한 채 있었던 것이다. 극단 단장은 쉬는 것이 너무나 오래되어서 제명하겠다고 말한 상태였다. 아직 한달 정도 라고 하는데 이렇게 가혹한 처사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의 건으로는 그리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짓 없는 내 마음을 깊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라면 그리 멀지도 않은 여행이기 때문에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몸에 맞게 빌린 검은 예복, 새로 구입 한 고타판 러시아 궁정의 귀족의 계보도, 두세 가지 사전 등을 작은 가방에 넣었을 뿐이었다. 과연 불안한 것이 많았던 때였기 때문에 떠나간 후 남겨지는 것도 걱정스럽고 또한 역에서 눈물을 흘린다거나 한다면 꺼림칙할 것 같아서 다음날 아침 일찍 엘리스을 어머니와 함께 친지가 있는 곳으로 가게 했다. 나는 여행 준비를 갖추고 문을 닫고 열쇠를 입구에 사는 신발 가게 주인에게 맡기고 나갔다.
러시아 가고 내용은 무엇을 쓰면 좋을 것 인가. 자신의 통역 임무는 금새 저를 데려가 하늘 높은 구름 위에 떨어졌다. 내가 장관 일행에 따라붙어 페테르 부르크에 있는 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파리 절정의 화려함을 얼음과 눈 위에 옮긴 왕성 장식, 일부러 노란 촛불을 엄청나게 밝혀 있는 가운데 다수의 훈장, 다수의 견장이 반사하는 빛, 조각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낮잠 불에 추위를 잊고 사용 궁중 여성의 부채가 휘날리는 모습 등으로 그 속에서 프랑스어를 가장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은 나였기 때문에 초대 한 사람과 초대 한 사람과의 사이를 주선하고 심부름을 끝 마치는 것도 대부분 나였다.
그 동안 나는 엘리스을 잊지는 않았다. 아니, 그녀는 매일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출발 한 날에는 평소와는 달리 혼자 등불과 마주할 괴로움에 지인의 곁에서 밤이 될 때까지 이야기하고 피로를 느끼고 집으로 와서 곧바로 잤다. 일어났을 때의 불안함은 이런 생각은 생활에 고통 받고 오늘 하루의 식사가 없었던 때에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편지의 개요이다.
또한 얼마 안 지나 온 편지는 매우 절박한 마음으로 쓴 것 같았다. 편지는 아니라는 말로 시작했다. ‘아니,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의 깊은 바닥을 이제야 알았어요. 당신은 고국에 의지가 되는 친족도 없다고 말씀하시니 이 땅에 좋은 세상살이를 위한 일이 있다면 머무르지 않으실 연유가 없겠지요. 또한 나의 사랑으로 계속 붙잡아 둘 것입니다. 그것도 개의치 않으시고 동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신다면 어머니와 함께 가는 것은 간단하겠지만 그토록 비싼 여행 비용을 어디에서 구하면 좋을까요. 무슨 일을 해서라도 이 땅에 머물러 당신이 세상에 나가시게 될 날을 기다리고 싶지만 얼마 간의 여행이라며 출발하신 요 이십 여일, 이별의 예감은 날로 더해 갈 뿐입니다. 헤어지는 것은 단지 순간의 고통일 뿐이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어요. 내가 임신한 사실을 간신히 알게 되었는데 만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어머니와는 심하게 언쟁을 벌였어요. 그렇지만 나 자신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마음을 먹고 결정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도 포기했어요. 내가 동쪽으로 가게 되면 쉬테틴 근처의 농가에 살고 있는 먼 친척에게 몸을 맡기겠다고 말했어요. 써 보내신 것처럼 대신 각하께서 당신을 중용하고 계신다면 내 여비는 어떻게 든 될 거예요. 지금은 오로지 당신이 베를린에 귀국하실 날만을 기다릴 뿐이에요.’
나는 이 편지를 보고 처음으로 내 입장을 분명히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부끄러운 것은 나의 둔한 마음이다. 내 몸 하나의 장래에 대해서도, 또한 자신의 몸과 관계없는 남의 일에 대해서도 결단력이 있다며 자랑했지만 이 결단력은 순조로운 때만 존재 하고 역경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믿어왔던 나와 그녀와의 관계를 조명 내려는 때는 믿어왔던 마음의 거울은 흐려져 있었다.
대신은 이미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근시안은 오로지 자신이 다하고 있는 직분만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나는 미래의 희망을 잇는 다는 것에는 하느님도 아시겠지만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깨닫고 왜 나의 마음은 여전히 차가운 상태로 있을 수 있었을까. 이전에 친구가 추천 했을 때에는 장관의 신임은 지붕 위의 새처럼 여겨졌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이것을 손에 넣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자와가 그 무렵 입을 뗄 때마다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함께 이런 식으로 하면 좋겠다는 둥 말했던 것은 장관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공적인 것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것 인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경솔하게도 그에게 엘리스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말했다는 것을 일찌감치 장관에게 전한지도 모른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스스로 자신의 본령을 자각 했다고 생각하여 기계와 같은 인간은 되지 않으리라 맹세했지만 이것은 발이 묶여 하늘로 방사 된 새가 잠시 날개를 움직여 자유를 얻어 승리한 것이라고 하는 듯한 것이 아닌가. 다리 실은 푸는 수단도 없다. 이전에 이를 조종하고 있던 것은 내가 근무고 있던 모 부처의 장이었고 지금은 이 실은 한심하게도 아마가타 백작의 수중에 있다. 내가 대신 일행과 함께 베를린으로 돌아간 것은 딱 새해 아침이었다. 역에서 헤어져 우리 집을 향해 마차를 달렸다. 여기에서는 지금도 섣달 그믐 날 밤에 자지 않고 설날 아침에 자는 관습이 남아있어 거의 모든 가정집이 적막하였다. 추위는 매서웠고 길거리의 눈은 날카롭게 뾰족한 얼음 조각이 되어 화창한 날의 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차는 클로스터 거리를 꺾어 집 입구에 멈췄다. 이 때 창문을 여는 소리가 났지만 마차에서는 보이지 않고 마부에게 가방을 갖게 하고 계단을 오르려고 하자 엘리스가 계단을 뛰어 내려 오는 것을 만났다. 그녀가 한마디 외치며 내 목덜미에 찰싹 달라붙는 것을 보고 마부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뭔가 수염 속에서 말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잘 돌아 오셨어요. 돌아 오지 않으셨다면 내 생명은 끊어져 있었을 거예요."
내 마음은 이때까지도 정해지지 않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과 영달을 추구하는 생각이 어떠한 경우에는 애정을 짓누르려 하고 있었지만, 그저 이 순간은 고민하며 망설이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녀를 품에 안고 내 어깨에 기대어 머리를 기대게 하였다. 그녀의 기쁨의 눈물이 똑똑하고 어깨 위로 떨어졌다.
"몇 층에 가지고 가면 좋은거요."하고 징처럼 외친 마부는 재빨리 올라와 계단 위에 서 있었다.
문밖에 마중 나와 있던 엘리스의 어머니에게 마부에게 감사인사를 해주세요 하며 은화를 주고 나는 손을 잡고 끄는 엘리스와 같이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한 번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책상 위에 흰 목면, 흰색 레이스 등이 드높이 쌓아 있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싱글벙글로 이것을 가리켜 "어떻게 보시나요. 이 마음의 준비를."라고 말하며 한 무명의 조각을 집어 들었는데 보니까 기저귀였다. "내 마음의 즐거움을 상상해봐요. 태어날 아이는 당신과 닮은 검은 눈을 가지고 있겠죠. 이 눈동자. 꿈에서만 보던 당신의 검은 눈이에요. 태어날 날에는 당신의 올바른 마음으로 설마 다른 이름을 쓰게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유치하다고 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세례를 받는 날은 얼마나 기쁠까요." 올려다 본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2-3 일 동안은 대신께서도 여행의 피로가 남아있을 것이라며 감히 방문하지 않으시고 집에 만 틀어 박혀 있었지만 어느 날 해질녘에 사용인을 보내 나를 불렀다. 가서 보니 대우가 아주 극진하였는데러시아에 다녀온 노고를 치하하며 자신과 함께 동쪽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는가, 자네의 학문이야말로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네만 어학만으로도 세상에 쓰이기에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체류가 너무 길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연고도 있겠지 싶어 아이자와에게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해서 듣고 안심했다네, 하고 말씀 하신다. 도저히 거절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거 정말 큰일 났군, 싶었으나 과연 아이자와의 말을 실언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만약 이 도움에 의지하지 않으면 본국도 잃고 명예를 회복하는 길마저 끊기게 되어 내 몸은 이 넓디 넓은 유럽 대도시의 사람의 바다에 묻히고 말 것이라는 일념이 마음 속에서 갑자기 터져왔다. 이 무슨 지조 없는 마음인가. "잘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은.
아무리 내가 철면피라 할지라도 돌아가 엘리스에게 무어라 말한단 말인가. 호텔을 나설 때 나의 마음의 혼란함은 비유 하려고 해도 그에 적당한 것이 없었다. 나는 길의 동서조차도 모른 채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와중에 오가는 마차를 모는 마부에게 몇 번이나 욕을 얻어 먹어 놀라며 홱 비켜섰다. 잠시 후 문득 주위를 보니 삼림 공원 옆에 나와 있었다. 쓰러질 것 같이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 타는 듯이 뜨거운 망치로 두드려 맞은 것 같이 땅땅 울리는 머리를 어깨에 기대고 죽은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으로 대체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혹독한 추위가 뼈를 관통하는 듯 느껴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밤이 되어 눈이 끊임없이 내려 모자의 차양이나 코트의 어깨에는 3센치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벌써 열 한시도 지났을까. 모하비트, 카루루 거리를 지나는 철도마차의 선로도 눈에 묻혀 브란덴 부르크 문 옆의 가스등만이 외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일어서려고 하는데 발이 얼어 있어서 양손으로 문질러 간신히 걷기 시작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다리를 옮기는 것에 진척이 없어서 크로스텔 거리까지 왔을 때는 자정쯤이었다. 여기까지 온 길을 어떻게 걸어 왔는지 모르겠다. 일월 상순의 밤이라 운더 덴 린덴의 선술집, 다방은 여전히 사람의 출입도 많고 번화하였을 텐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머릿속에 자신은 용서받아서는 안 될 죄인이라는 생각 만이 가득했다.
4층 다락방에 엘리스는 아직 자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하나하나 빛나는 별의 등불이 어두운 밤하늘에 뚜렷하게 보이는데 계속해서 내리는 백로 깃털 같은 눈에 금새 숨겨져 바람이 가지고 노는 듯하였다. 집 안에 들어 와서 피로를 느끼고 몸의 관절 마디마디의 통증을 참을 수 없어 기는 듯이 계단을 올랐다. 부엌을지나 방 문을 열고 들어 갔는데 책상 쪽에서 기저귀를 누비고 있던 엘리스가 돌아보며 "앗"이라고 외쳤다. "어떻게 되신 거예요. 당신 모습이."
놀란 것도 당연했다. 창백해져서 죽은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나의 안색, 모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머리는 엉망으로 흐트러져 몇 번이나 길에서 넘어져 구른 탓에 옷은 진흙 섞인 눈에 더럽혀졌고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대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무릎이 떨려 서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의자를 잡으려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주위 사람을 알아 볼 수 있게 된 것은 수 주간이 지난 후였다. 열이 높고 헛소리만 하고 있던 것을 엘리스가 여러 가지로 돌보아 주었지만 어느 날 아이자와가 찾아와서 내가 그녀에게 숨기고 있던 사실을 차례로 상세히 알고는 대신에게는 병이 난 사실만을 알리고 적당히 둘러대어 둔 것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병상 옆에 있는 엘리스를 보고 그녀의 심하게 변한 모습에 놀랐다. 그녀는 지난 몇 주 동안 심하게 야위었고 충혈 된 눈은 쑥 들어가고 잿빛 뺨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자와의 도움으로 일상 생활은 곤란하지 않았지만 이 은인은 그녀를 정신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녀는 아이자와와 만났을 때 내가 아이자와에게 한 약속을 듣고 또 그 날 저녁 대신에게 들려준 승락의 말을 알고 갑자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한다. 얼굴 빛은 실로 흙빛이 되어 “나의 토요타로씨는 그렇게까지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로군요.”라고 소리치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자와는 어머니를 부르고 그녀를 도와 침대에 옆으로 뉘었는데 잠시간 정신이 들었을 때는 눈은 똑바로 쳐다본 채 옆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고 몹시 욕을 퍼부으며 머리를 쥐어 뜯고 이불 등을 물어뜯고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한 모양새로 물건을 찾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가져다 주는 물건은 모두 던져버렸는데 책상 위에 있던 기저귀는 손에 건네주었더니 확인해보며 얼굴에 갖다 대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소란 스러운 일은 없었으니 정신 적인 활동은 거의 전혀 할 수 없게 되어 그 쓰러진 모습이 마치 간난아기와 같았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더니 심한 마음의 피로로 인하여 급자기 일어난 편집증이라는 병인데 치유될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발도르프에 있는 정신 병원에 넣으려고 했으나 소리치고 우는 통에 그 후로는 그 기저귀 하나를 몸에 지니고 몇 번씩이나 꺼내 보고 또 보며 훌쩍훌쩍 울었다. 내 병상을 떠나지는 않았으나 이것도 그렇게 의식해서 하고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이따금씩 생각난 듯이 “약을, 약을.”이라고 말할 뿐. 내 병은 완전히 나았다. 엘리스의 살아있는 송장을 끌어안고 흘러 넘치는 눈물을 쏟은 것이 몇 번이던가. 대신을 따라 동쪽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출발한 것은 아이자와와 상담하여 엘리스의 어머니에게 아주 얼마 안되는 생계를 꾸려가기에 충분한 정도의 자금을 건네고 가엾은 마음을 다친 딸의 복 내의 아이가 태어난 후의 일도 부탁해 두었다.
아이자와 겐키치와 같은 좋은 친구는 세상에 둘도 없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렇지만 나의 뇌리에는 한점의 그를 미워하는 마음이 오늘까지도 남아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