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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아이, 문학 텍스트 입문

prajna_ 2018. 6. 10. 21:57

입문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근현대 사상 및 철학적 스키마를 요하는 책이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제 1장은 기호론 이후에 형성된 독서론에 대한 내용으로 읽기에 있어 독자는 자유롭게 의미를 생산한다는 내용을 담지하고 있다. 그는 소세키의 <풀베개>속의 나미 씨와 화가의 소설 읽기를 둘러싼 대화로 시작하여, 소설에서 줄거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부상시킨다. 줄거리가 소설의 본질인가, 아니면 줄거리는 없어도 소설은 성립하는가. 이렇게 읽기의 실천을 단순히 의미생산이라는 자칫 자의적이 되기 쉬운 방향으로 확산시켜 가는 것이 아니라, 문학 구조의 문제로 집중시켜 가는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쫓아 가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나미 씨에 대해 화가가 제시하려고 한 읽기, 즉 시간의 흐름을 자유롭게 절단하여 정지시키는 읽기는 명백하에 독서의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다. <풀베개>의 용어로 발하면 비인정의 세계이다. (중략) 직선적 독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줄거리를 읽어낸느 일에 빠져 있는 나미 씨의 독서에, 서적을 미궁으로 읽는 읽기의 맹아는 텍스트의 흐름을 우연에 맡겨 절단하는 화가의 독서에 포함되어 있다. (pp.24-25)

 

제2장은 문학의 본질을 이루는 언어의 문제는 모든 구조 분석에 앞서 이야기되어야 하며 언어의 양상은 한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담지하고 있다. 서술은 보다 일반적인 언어와 인간의 관계라는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마에다는 현재의 대중사회상황 속의 언어상황에서 시작하여 그 검토에 의해 언어와 인간의 관계의 변화를 고찰하고, 지금은 언어에서 인간 내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깊이가 삭제된' 말, 내면에 연결되지 않는 말 그 자체의 존재라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됐다는 것, 인간은 거꾸로 이 말의 바다에 떠다니는 것 같은 존재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 언어상황은 오히려 에도시대의 언어상황과 흡사하며, 에도에는 일종의 '음성중심주의'가 있었다고 하는 대단히 흥미로운 시사를 주고 있다.

 

그런 기호로서의 제국, 표징의 제국으로서의 에도 일본이 급속하게 해체되어간다. 그리고 여러 문화의 영역 속에서 시청각적인 것보다 말이 우위를 차지한다. 데리다가 말한 로고스중심주의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활자문화가 여러 문화의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틀림없이 메이지 이후의 일입니다. (중략) <세상 목욕탕>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 둘은 물론 이질적인 작품입니다만 깊이를 삭제한 말, 인간 내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향성을 잘라 버린 말, 말하자면 말의 형태를 한 인간, 이라는 점에서, 또, 거기에 말이 현전하고 있음으로 문학텍스트가 성립한다, 라는 원리가 믿어지고 있다 혹은 믿으려고 하고있다, 는 점에서는 이 두 텍스트는 상통하는 바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p.4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