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2018. 6. 17. 10:31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세 가지 근본 활동인 '노동', '작업', '행위'를 구분한다. 노동이 물질대사와 같이 반복되고 소모되어 사라지는 것이라면, 작업은 건축물과 같이 영속성을 띠는 것을 말한다. 행위는 작업의 영역에서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것, 다시 말해 정치적인 영위다. 셋 중에서 문학은 작업의 영역에 속한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작가가 죽은 뒤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인생을 풀요롭게 한다. 독자들은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인간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적어도 근대문학에 있어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이다.

그에 반해 '텔레비전 드라마'는 노동의 영역으로 소비되는 속성이 있으며 영속성을 띠지 않는다.

노동과 일의 경계선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인간은 노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작업의 영역에서 더욱 창의적인 일을 할 것이다. 작업이 차츰 노동처럼 되어 갈 때 문화의 위기가 생긴다. 이것이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문화 위기론의 요체다." (pp.6-7)

"한국 문학은 대중문학이나 대중문화를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몰아내고 상대화시킴으로써 독자들 위에 군림해왔다. 분명히 한국문학은 '구별 짓기'를 통해 독자들을 선택해 온 면이 있다. 그러나 근대문학은 이미 실효성을 잃었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이 종말을 맞은 이후의 문학은 도대체 어떤 것이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것에 대해 <동물화 하는 포스트모던>의 아즈마 히로키는 만화. 애니메이션이나 라이트노벨, 게임 등 일본의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그 가능성을 탐색한 바 있다.

이 책은 엔터네인먼트 영역의 작품들, 혹은 서브컬처로 불리는 영역의 작품들을 주요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필자는 '이야기'의 차원에서라면 문학과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드라마,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쇼 오락프로그램이나 대중음악등을 한데 묶어 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pp.8-9)고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내면에서 '근대문학 이후'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의 시급성과 결합하면서 차츰 강한 당위성을 띄게 되었다(p.9)고 밝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본 서가 오쓰카 에이지나 아즈마 히로키 등의 요설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느끼며,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학, 좁은 의미에서는 문화평론에 밀접한 내용이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내용이란 책의 부제인 포스트모던의 새로운 신들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것이었다. 심급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 새로이 부상하는 문화콘텐츠의 면면을 어렵지 않게 분석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prajna_
summary2018. 6. 10. 21:57

입문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근현대 사상 및 철학적 스키마를 요하는 책이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제 1장은 기호론 이후에 형성된 독서론에 대한 내용으로 읽기에 있어 독자는 자유롭게 의미를 생산한다는 내용을 담지하고 있다. 그는 소세키의 <풀베개>속의 나미 씨와 화가의 소설 읽기를 둘러싼 대화로 시작하여, 소설에서 줄거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부상시킨다. 줄거리가 소설의 본질인가, 아니면 줄거리는 없어도 소설은 성립하는가. 이렇게 읽기의 실천을 단순히 의미생산이라는 자칫 자의적이 되기 쉬운 방향으로 확산시켜 가는 것이 아니라, 문학 구조의 문제로 집중시켜 가는 것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쫓아 가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나미 씨에 대해 화가가 제시하려고 한 읽기, 즉 시간의 흐름을 자유롭게 절단하여 정지시키는 읽기는 명백하에 독서의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다. <풀베개>의 용어로 발하면 비인정의 세계이다. (중략) 직선적 독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줄거리를 읽어낸느 일에 빠져 있는 나미 씨의 독서에, 서적을 미궁으로 읽는 읽기의 맹아는 텍스트의 흐름을 우연에 맡겨 절단하는 화가의 독서에 포함되어 있다. (pp.24-25)

 

제2장은 문학의 본질을 이루는 언어의 문제는 모든 구조 분석에 앞서 이야기되어야 하며 언어의 양상은 한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담지하고 있다. 서술은 보다 일반적인 언어와 인간의 관계라는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마에다는 현재의 대중사회상황 속의 언어상황에서 시작하여 그 검토에 의해 언어와 인간의 관계의 변화를 고찰하고, 지금은 언어에서 인간 내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깊이가 삭제된' 말, 내면에 연결되지 않는 말 그 자체의 존재라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됐다는 것, 인간은 거꾸로 이 말의 바다에 떠다니는 것 같은 존재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 언어상황은 오히려 에도시대의 언어상황과 흡사하며, 에도에는 일종의 '음성중심주의'가 있었다고 하는 대단히 흥미로운 시사를 주고 있다.

 

그런 기호로서의 제국, 표징의 제국으로서의 에도 일본이 급속하게 해체되어간다. 그리고 여러 문화의 영역 속에서 시청각적인 것보다 말이 우위를 차지한다. 데리다가 말한 로고스중심주의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활자문화가 여러 문화의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틀림없이 메이지 이후의 일입니다. (중략) <세상 목욕탕>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 둘은 물론 이질적인 작품입니다만 깊이를 삭제한 말, 인간 내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향성을 잘라 버린 말, 말하자면 말의 형태를 한 인간, 이라는 점에서, 또, 거기에 말이 현전하고 있음으로 문학텍스트가 성립한다, 라는 원리가 믿어지고 있다 혹은 믿으려고 하고있다, 는 점에서는 이 두 텍스트는 상통하는 바가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p.42-44)

 

 

Posted by prajna_
summary2018. 6. 8. 13:44

 

"새로운 문학은 가능할까?"

 

금정연과 정지돈의 시론이라고 보면 되겠다. 위트 넘치는 책이었고 한국 문단의 등단시스템 즉 관료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관료제 유토피아>에서 규제철폐나 세계화 같은 단어들이 실제 그 의미와 얼마나 반대되는 것인지를 말한다. 중요한 건 규제철폐와 세계화 이후 관료제가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어느때보다 극심한 자격증과 서류절차 공무원들이 들끓는 곳으로 변했다. 그러니까 같은 맥락에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한국문학은 관료제다. 물론 약간의 비약을 허락해준다면." (pp.147-148)

 

내가 맞게 읽은 게 맞다면 새로운 문학이 없는 이유에 대해 두사람은 첫번째 이유로 등단시스템을 들고 있는 것이라 짐작된다.

 


"결국 사람들이 집착하는 건 재밌는 이야기, 기발한 아이디어, 또는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는 것. 독립출판을 하는 이들은 실험적이거나 고전적인 작업을 하(려고 하)즌 이들인데 소설은 굉장히 퇴행적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소설에 대해 사실은 굉장히 관심이 없다는 것, 이를테면 미술은 현대미술이나 추상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문학에 대해서는 미술로 치면 인상파 이전의 인식, 현실이나 관념을 모사해내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한 아이러니에 대해 말했다." (p.33)

 

 
"수상작이라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야지, 하는 식의 고려 역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금이 수천에서 수억이니까요. 결국 동글동글한 작품만 뽑힐 공산이 크다는 겁니다. 적잖은 상금이 걸린 장편 공모전에서 실험적이거나 문제적인 작품에 상을 준 적이 있나요? 작가들은 앞으로 점점 더 상이 요구하는 기준(그게 도무지 뭔지 모르겠지만)에 맞춰 글을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p.49)


 

얄팍한 독자의 입맛과 출판사 사정이 맞물려 문학의 정상성이 상정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무엇이란 안티테제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와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만 비로소 새로움은 탄생하는 것이다.

 


"너무 흔히도 예술작품은 오로지 무엇을 의미하는가로 평가받았지 그것이 무엇을 하는가에 관심이 없었다." (p.158)

 


"어떤 내용의 소설을 쓰느냐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의 개념을 바꿔야 합니다." (p.159)

 

제롬 라베츠가 비판과학의 기치를 내세우며 1992년 그 유명한 토마스 쿤의 정상 과학 개념을 확장시킨 탈정상 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한 것은 자연스럽게 독자로하여금 정상문학이라는 개념과 탈정상문학이라는 개념과 범주를 환기시킨다.

 


탈정상문학에 대한 두 사람의 고찰은 책을 통해 접하길 바란다.

 

 

Posted by prajna_